마음수련 사이비

마음수련이 사이비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 답

Q. 마음수련 그거 사이비 아니야?

A.
마음수련이 사이비가 아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가끔 있어. 내 친구 중에서도 부모님이 아주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하더라고. ‘우리 착한 아들’이 사이비에 빠진 게 아닌지 명상센터에 찾아오셨다고. 그런데 둘러보고는 그건 아니네 하면서 가셨다고. 한번 가면 갇힌다,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 엄마는 그런 소리를 들으셨대. 그런데 막상 가니까 그게 아니었던 거지. 때때로 근거가 분명한지 아닌지도 따져보지 않고 ~카더라 일명 ‘카더라통신’을 근거로 삼는 실수를 하는 거 같애. 나도 그럴 때가 많았고.
마음수련을 하면서 아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글을 본적이 있어. 그때 이게 맞나? 나도 글을 읽는데 마음이 점점 불안해지더라고. 내가 이상한 거에 빠진 건가? 하는 두려움 있잖아. 그게 며칠을 간 거 같아. 그런데 그렇게 며칠 지나고 보니까 신분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말에 갑자기 불안해하고 있는 내가 우스운 거야. 나는 분명히 효과를 느끼고 있었거든. 어떤 단체든 부정적인 노이즈가 없는 곳은 없잖아.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그건 분명 이유가 있고 나는 내가 계속하면서 판단해보는 게 맞겠다 생각했지.

마음수련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상 사이비라는 의심을 할 만한 요소가 좀 있는 거 같긴 해.
첫째는 명상이라는 것의 생소함이야. 명상하면 이게 뉴에이지인가? 종교인가? 그런 식으로 연결 되는 거지. 명상, 마음을 닦는다 또는 버린다는 것에 대해 사람마다 각자 다르게 인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사람의 마음이라는 분야는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비과학적, 종교의 영역이라는 생각 때문이지.
인간이 마음을 버려서 없어진다고? 그건 평범한 사람은 경험하기 힘든 현상이기에 생소하고 의심스러울 수 있어. 과거를 보더라도 마음 비운다는 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었지. 신실한 종교 생활과 오랜 수행을 해야 평온한 마음, 진리와 깨달음에 다다를 수 있었다는 얘기도 많았고 실제로 많은 성인과 수행가들이 선조들의 뒤를 이어 그렇게 수련해왔던 것 같아..
마음을 비우는 게 미신이든 아니든 어떤 신의 힘을 빌어야 가능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래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명상이 비과학적이며 신의 힘을 빌리는 종교나 그 비슷한 사이비 종교라는 선입견을 가지기도 하지.
두번째 요인으로는 유독 우리나라의 종교에서 사이비, 이단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대중을 확보하지 않은, 공인되지 않은 종교활동(그 인정은 누가 해주는 것인지는 모르지만)을 두루 일컬어 부르는 단어가 언젠가부터 사이비라고 통용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인식 속에(특히 한국인들) 마음을 닦는 단체는 사이비와 연관되어 저장 되어있는 것 같아.
나 역시도 사이비라는 것의 정의를 생각해봤을 때, 종교를 따르는 사람이 많아져서 공식적인, 뭔가 합법적인 종교가 되면 그건 사이비가 아니고, 따르는 사람이 적으면 사이비인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 하지만 그것은 특정 종교에서 타 단체를 구분지을 때 사용되는 단어라고 결론이 내려졌지.
또 한가지 요소는 마음수련이 사이비처럼 보이게끔 하는 사람들이 있어. 물론 어디에나 사이비처럼 보이게 하는 사람은 존재해. 어릴 때 친구 따라서 가보았던 교회에서 정신 나간 것처럼 노래를 부르는 아주머니를 보고 무서워서 울면서 나왔던 기억이 있어. 내 마음에서는 거기는 사이비였지. 결국 사이비다 아니다는 그 사람 마음에 달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외부에서 봤을 때, 그걸 종교처럼 사이비처럼 보이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그런 오해는 끊이지 않을 거고, 그건 마음수련의 문제가 아니라 그걸 하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거라고 생각해.
아무리 그러지 마세요 라고 해도 그게 .. 달라질까? 교회를 사이비처럼 보이게 하는 그 아줌마에게 그렇게 노래하지 마세요 라고 해도 그게 달라질까?
솔직히 말하면 나도 마음수련하면서 교회에서 본 그런 아줌마 같은 사람을 많이 봤어. 너무 좋다고 감사하다고 이거 안 하면 큰일 난다고…그런 어르신들도 있고… 간혹 그 마음수련이랑 내가 하는 마음수련이 같은 건가 싶을 때도 있어. 자기 마음에 드는 자기만의 ‘마음수련’을 하는 사람도 있어. 하지만 그런 의심스런 아줌마를 보고도 계속 하는 건 앞서 말했듯이 마음수련을 통해서 바뀌어진 달라진 나를 보고 그걸 믿기 때문에 계속 하는 거지.

사이비 종교라는 게 어떤 강제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존재해. 마음수련에 한번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음 과정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닌지, 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등 걱정이 되기도 하잖아? 또 살면서 듣거나 경험했던 ‘도를 아십니까?’나 사이비 종교 단체의 횡포에 관한 뉴스, 기사도 꽤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봐. 그래서 종교적인 느낌이 조금만 든다 하면 그런 걱정을 하게 되는 거지. 그런데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거 같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
마음수련은 내가 경험했을 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버려서 본래마음(마음수련에서는 ‘우주마음’이라 함)이 되는 방법이 있는 곳이지. 그래서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위해서 함께 살아가자고, 그런 삶이 진리의 추구고 인간완성이라고 말하지.
이런 말들이 약간 종교적으로 느껴질 수 있어. 근데 진리가 구도자, 종교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잖아. 종교, 철학, 대학에서도 추구해오고 있는 초월적 가치가 진리일 뿐인 거지. 진리를 알고 인간 완성이 되는 그런 방법을 나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잖아? 근데 이런 방법이 있는 거야. 그리고 내가 달라지고 있고.

그리고 이 수련방법을 만든 사람은 우주마음이 되어 있는 사람이어야 될 거 아냐? 이 수련방법을 만든 우명 선생은 본인의 책에 이 방법을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어떻게 완성이 되었는지 자세하게 적어놨어. 그런데 여기서 방법을 만든 분이 우주마음이라 하니까 솔직히 뭔가 ‘불편한’ 감정이 드는 건 왜일까? 나는 괜찮고 다른 사람은 불편한 그런 감정 말야. 처음엔 나도 그렇더라고. 근데 중요한 건 내가 그렇게 완전하게 될 수 있는가 하는 거야. 그 방법을 배워서 내가 제약 받지 않고 온전히 이 순간에 있을 수 있는 그런 완전한 상태가 되는 것. 나는 그게 목적이었고 그게 아주 큰 부분이었지. 직접 경험해봐야 알 수 있는 상태.

사람 마음이 진짜 버려지는지, 어떻게 다 없어지는지, 우주마음이 될 수 있는지, 완성이라는 게 될 수 있는지, 묻기 전에 스스로 경험해보면 가장 정확한 판단이 된다고 생각해. 세상에 새롭게 나오는 것은 항상 그런 방법으로 증명되어 왔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증명해왔기 때문에. 내 머릿속에서 상대의 행동을 해석하고 말을 분석하고 이게 맞을까 저게 맞을까 생각하는 것보다 먹어보는 게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겠지. 그럴 용기가 없다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지 못한다면 아예 시작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
방법이 도움이 되면 고마운 것이고, 싫거나 나에게 안 맞는다고 생각되면 그만 하면 돼. 붙잡을 거라고?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나는 나의 삶, 행동, 감정에 있어서 더 벗어나고 큰 자유를 가지게 됐기 때문에 계속 하고 있어. 시작하는 사람도 내가 하는 게 맞는 건지 객관적으로 한번 따져보고 의심하는 것도 필요하고, 그 과정이 지혜롭다고 생각해.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 결국 내 선택이고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가는 거 아닐까?